사소하고 소중한 것들

권지현, 김형주, 민경영, 박미정
세상에는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합리화한다. 한정된 시간과 자본 탓에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선택의 기준을 정할 때 사소한 것들은 가장 먼저 밀려난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존재의 이유가 있다. 그것들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이유다. 그렇게 관계의 고리들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그 고리를 끊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생존이니, 아름다움이니 하는 명목으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것들을 향해 과도한 폭력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4명의 작가-권지현, 김형주, 민경영, 박미정-는 각자의 독특한 작업들로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치부되고 마는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권지현 작가는 ‘서로의 이웃’인 우리 인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다. 작가는 끝없는 분쟁과 반목, 전쟁까지 불사하며 타자를 비인간화하고 자연을 소비하는 폭력을 경계하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전래동화 속 주인공들을 소환하여 우리 이웃에 대한, 공동체와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2022년 展(아트노이드178)에서 ‘서로의 이웃’인 우리들 인간의 에피소드를 엄지공주, 인어공주 이야기로 풀어냈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작가는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들과 함께 공생하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2023년 아트노이드178 기획전 에서 작품 ‘인류세를 삽니다’를 통해 산불로 모든게 사라지고 척박해진 땅에 제일 먼저 돌아와 대지를 되살리는 “쑥”을 소개했다. 이웃들과 함께 공생하며, 자연을, 지구를 돌보는게 아니라 자연은 곧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되찾길 바란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한 해동안 우리 곁에서 더운 여름 그늘이 되어 주었던 소중한 이웃인 플라타너스의 잎들, 2023년 한해의 시간을 함께하고 떨어진 낙엽을 이용한 영상작품 < 식물의 시간 >(작가는 자신의 작품 제목 < 식물의 시간 >을 안규철 작가의 저서 < 사물의 뒷모습(2021) > 의 소제목에서 가져왔음을 밝힌다.)과 < 안녕, 플라타너스 >를 선보인다. 

김형주 작가는 산업화와 자본의 횡포 속에서 가장 먼저 스러져 가는 하찮고 사소한 것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관심을 갖고 있다. 2021년 < 초대받지 않은 손님 >展(아트노이드178)에서 매일 뽑히고 깎여나가는 정원의 잡초에 대해 그렸다. 나의 정원이 생기기 전부터 그 땅에서 자라던 모든 풀들은 다 저마다의 이름이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그들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싸잡아 잡초라 부른다. 잔디 외의 잡초는 제거 대상이다. 농작물이 아닌 풀들에는 제초제를 뿌린다. 잡초가 자라나지 못하도록 검정비닐을 둘러쳐 농작물을 키워낸다. 이 검정비닐을 주제로 한 전시가 2022년 < 어쩔 수 없다 >展(아트스페이스 휴)이다. 2023년 < 땅 위에 마시멜로 >展(아트노이드178)에서는 소여물로 팔기 위해 탈곡한 볏단까지 흰 비닐로 말아놓은 곤포사일리지, 일명 벌판 위의 마시멜로를 주제로 그렸다. 그의 작업에는 자연을 우리 마음대로 재단하고 쓸모와 이윤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우리의 폭력적인 태도에 대한 미안함이 담겨있다. 마치 이 땅에서 없어져도 상관없다고, 관심조차 주지 않는 존재들을 작품의 소재로 작업을 해 온 작가는 이것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계속되어도 괜찮은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신경하게 반복하며 합리화하곤 하는 우리의 행동들이 얼마나 폭압적인지 되돌아보고, 모든 존재들을 소중히 여기고,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나누고 배려하는 마음을 되찾아야하지 않을까. 그의 관심사는 이제 방사능오염, 기후위기와 같은 절멸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자연의 생존자들로 옮겨가고 있다. 낯선 모습으로 진화한 식물들의 존폐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건강에 무해한지 여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가. 

민경영 작가는 자신이 ‘흔적도형’이라고 명명한 ‘공간에 남아있는 시간의 흔적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낡은 집, 오래된 물건들과 공존하는 시간의 흔적들, 누군가의 삶과 함께 늙어간 공간에 남겨진 얼룩, 패인 자국, 벗겨진 페인트, 갈라진 틈들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 흔적들은 항상 없어져야만 하는 존재들일까. 감쪽같이 새것처럼 되는 것만 아름다운가. 작가는 오히려 이 흔적들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항상 죽음 언저리에 있을 것만 같은, 아니 죽음의 잔해같은 흔적들을 따서 선을 보태고 색을 넣어 형상화한다. 그렇게 작가의 손에서 살아나는 흔적도형들은 스스로는 물론 그 주변 공간까지 살려낸다. 작가는 사람들이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흔적들 속에서 누군가의 소중한 기억들을 되살리고, 그것들이 생생하게 살아온 시간들을 다시 소환한다. 시리즈 작품 “너와 나의 공룡”은 자신의 아이가 도화지에 남긴 흔적에 선과 형태를 보태어 아이와 보낸 소중한 시간, 추억을 담은 흔적도형으로 탄생했다. 2023년 12월 26일 다른 전시가 진행되고 있던 갤러리의 어두운 조명 아래 남아있던 흔적들은 작가에게 발굴되었고, 작품 “아트노이드231226”의 희고 밝은 화면 위에서 색을 얻었다.


박미정 작가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키네틱아트 작업을 해온 작가는 신체기관들의 움직임을 기계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한다. 2023년 < 받침대를 잡아먹힌 테이블 >展(아트노이드178)에서 금속 매체와 모터를 기반으로 한 작품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 : 흰 털의 변주곡”을 통해 공기를 밀어내고 허공을 가르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흰색의 ‘털기계’ 군집을 선보였다. 신체의 한 부분으로써의 ‘털’은 ‘피부의 변형생성물’이다. 그것은 외부의 정보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최전방의 감각기관이자 피부, 더 나아가 신체 전체, 우리 생명을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한 감각기관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털은 아름다움을 위해 얼마든지 잘리고 깎여나가고 제거되어도 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정말 털은 필요없는 사소한 신체 일부로 치부되어도 될 존재인가. 털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외부의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쉴 틈 없이 움직이며 정보를 모은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털은 움직인다. 작가는 털의 움직임을 가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털이라는 존재와 함께 우리 신체 외부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 항상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