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 개인전: BRIGHT & DEEP

김인

텅 비었다. 우리는 공간을 이렇게 이해한다. 누군가는 3차원적인 유클리드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누군가는 주관의 선험적 형식이라는, 단어 자체부터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공간은 그 자체로 빈 것이다. 동시에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자리한 유한한 곳이다. 그것은 '어둡고 밝은 면이 있고 제각기 높이가 다르며 계단처럼 올라가거나 내려오고 움푹 패고 … 경계가 지어지고 이리저리 잘려졌으며 얼룩덜룩한 공간'(미셸 푸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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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첫 개인전 『Bright & Deep』에서 작가 김인이 구상하고 제시하는 공간은 비어 있는 곳이 아니라 가득 채워져 있는 곳이다. 바슐라르의 작업과 현상학자들의 서술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균질적이고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온갖 다양한 성질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이미 설명하고 있다. 푸코는 「다른 공간들」에서 위와 같이 기술하면서 '우리의 원초적 지각의 공간, 우리의 몽상의 공간, 우리의 정념의 공간은 … 가볍고 지극히 맑으며 투명한 공간이거나, 어둡고 거칠고 혼잡한 공간이다. 그것은 높이의 공간, 꼭대기의 공간이고, 반대로 깊이의 공간, 진창의 공간이며, 흐르는 샘물처럼 유동적인 공간, 바위나 수정처럼 단단한 부동의 공간'이라고 덧붙인다.

흔히 어딘가로 들어간다고 말할 때 우리는 사각의 벽면으로 둘러싼 장소에 들어감을 무의식에 전제한다. 실제로 그 틀을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공간이 벽으로 구분되고 규정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러한 규정에 따라 벽 안의 공간이 비어있다고 여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지점에서 작가는 출발한다. 작가는 이러한 방식으로 인지되는 공간을, 더 정확히는 이렇게 일상적으로 감각되는 공간을 벗어나게끔 새로운 장소를 기획한다. 이는 단순히 일상을 벗어난 공간을 체험하라는 것이 아니다. 놀이동산의 티켓을 얇은 플라스틱 팔찌로 바꾸는 순간 우리는 쉽게 일상을 벗어난다. 그런 단순한 기분전환이 아니라 가능한 다른 세계에서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작가가 구상하는 공간이자 세계이다. 작가는 우리가 개미가 될 수는 없지만 우리를 둘러싼 공간이 개미굴이라면, 그곳에서는 우리는 개미처럼 사고하고 행동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공간이 곧 존재를 규정한다. 공간이 바뀌면 우리의 지각과 몸이 바뀌고 존재가 바뀐다. ● 한번쯤은 평행세계의 나, 다른 차원속의 나를 상상해보지 않았던가. 우리는 이처럼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옷장속이나 토끼굴로 기어들어갈 필요가 없다. 작가가 펼치는 공간에서 기존의 감각을 무화하는 경험을 통해 잠시 나를 잊기만 하면 된다. 어느 날, 산책을 나간다. 비좁은 골목 사이, 또는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공원 한 구석에서 세상의 틈과 같은 곳에 빠진다. 그 곳은 처음 보는 세계다. 내 몸의 시간은 구불거리며 흐르고, 내 주변은 꽉꽉 채워져 틈이 없다. 나는 물질들을 밀어내면서 고개를 까딱이고 팔다리를 움직인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존재하던 방식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다른 무엇인가가 된다. ● 이를 위해 작가는 벽면을 감춘다.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벽면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도록 감추면서 거꾸로 가득 찬 공간을 체감하게끔 한다. 이 모든 것은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고 깎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말하자면 가득 찬 공간을 조각하는 것과 같다. 공간을 조각한다는 말은 여기에서는 가득 차 있는 공간을 가정한 일종의 비유이다. 이전까지 작가는 모듈적 방법론을 연구해 자신의 작업에 적용해왔다. 모듈의 규칙적, 불규칙적 반복과 차이를 생성하는 반복 이미지, 나아가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하며 예측이 불가능한 리좀의 이미지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변환해왔다. 그것은 기하학적인 도형에서 파도와 물 등의 유동적인 것으로의 전환으로 이어지는 탐구이자 시도였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탐구를 김인은 드디어 현실의 공간으로 전환시킨다. 이를 위해 고정되지 않는 질료를 선택한다. 형태가 고정되지 않으며 완전히 비치지도 또 완전히 가리지도 않는, 그물망 같은 흐물거리면서도 탄력성이 있는 재료와 표면이 매끄럽고 자유롭게 형태를 변형시킬 수 있는 질료를 선택한다. 작가의 구상안에서 각각의 질료는 흐르는 듯 닫히고 열리는 듯 반복되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형태로서 공간을 베어낸다. 겹겹이 배치된 망을 통해 입자로 가득한 공간이 드러나고 총체성이 가득한 공간 곳곳에 찢기거나 베인 틈이 남는다. 이제 빛이 그 틈을 채운다, 아니 그 틈만큼 공간을 덜어낸다. 영롱한 빛이 다시 한 번 공간을 자르고 반대로 어둠이 공간에 깊이를 더한다. 이 안에서 잠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무엇임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작가 김인의 첫 실험이자 출발점이다. 시작은 여기에서부터이다. ■ 김태은

변화 가능성과 예측 불가능한 지점을 발견하길 즐깁니다. 전시에서 영상을 사용하는 것도 공간의 시각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어요. 공간 자체를 사유한다는 것이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공부하듯이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감각 경험을 통해 공간이 지니고 있는 잠재적 힘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작가 인터뷰 중) ■ 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