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복숭아

이은

Pale Peach, 창백하고도 푸른 빛 - 하늘을 품은 달을 만나다 ● 저 멀리 바다를 등지고 서면 구름과 안개가 낀 깊은 골짜기가 보인다. 그 너머에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이 있다. 짙은 복숭아 향이 나는 나무 앞에 멈춰 서서 올려다본 하늘은 아직 검푸르다. 새벽녘 하늘에는 달이 떠 있다. 그 옆에 달 그림자가 진다. 아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달이다. 나무에 걸린 수천 개의 달들은 저마다의 하늘을 품고 있다. 마치 파란 씨앗처럼 보인다. 창백하고도 푸른 빛을 띤 작은 하늘들은 다시 시작될 날을 기다린다. 이것은 작가 이은의 시적 상상력이 그려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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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바라본 달 속의 하늘은 캔버스 가득 푸른색이 깊숙이 스며든 화면처럼 응축된 깊고 푸른 빛을 띠고 있다. 작가가 물질로부터 추출해서 만든 자신만의 '뜨거운 푸른 빛'을 내는 안료로 캔버스를 가득 채워서 내밀한 공간을 완성하듯, 이 파란 씨앗도 마찬가지다. '눈부신 파란 열매'는 내밀한 공간 그 자체이자, 존재의 입구다. 그것은 겹쳐진 주름들 속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언뜻 보이는 검푸른 틈새 속에 창백하고도 푸른 빛. '깊은 바다가 웅크리고 있는 광대한 심연'처럼 무시무시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창백하고도 푸른 빛은 너무나 매혹적이다.

알렙(Aleph) ●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지하실에서 보르헤스가 두려움과 흥분 속에서 마주했던 '직경 2-3cm의 작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크기의 축소 없이 우주의 공간이 그 안에 들어있는' 알렙(Aleph)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보르헤스에게 알렙은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그 비밀스럽고, 상상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그것, 불가해한 우주'를 보여주었다. '무한히 많은 사물로 동시에 존재하는 세상의 모든 지점'이 마치 서로 맞놓인 거울에 무한히 반사되듯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자신을 바라보는 도저히 셀 수 없이 많은 세상의 모든 눈과 마주쳤다. 모든 곳, 모든 시간을 모조리 비추어 내는 빛과 마주한 것이다. 보르헤스가 본 알렙은 작가 이은의 푸른 씨앗과 닮았다. 깊은 어둠 속에서 푸른 빛의 눈은 누군가를 기다린다. 경외로운 세계와 감연(敢然)히 마주할 자가 자신을 찾아올 그 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자는 경험의 끝이자 세계의 끝, 어떤 인간도 넘어서지 못하는 곳까지 가고자 용기를 가졌다. 그/그녀의 손끝에서 진정한 예술작품은 태어날 것이다(릴케).

「Eternal, 2020」(영상설치, 11분 45초) ● 작가 이은은 동굴의 벽면처럼 규사, 모래, 석회를 배합하여 물질적이고 거칠고 단단한 촉각적인 지면을 만드는 작업에서 출발한다. 자연의 물질로부터 추출된 푸른 빛 안료를 화면 안 깊숙이 스미도록 침투시킨다. '시간이 공간화된 층'이자 '공간이 시간화된 층'(이선영)들이 겹겹이 쌓인다. 이 과정을 통해 얇지만 단단한 지층이 완성된다. 그 위로 물과 불, 빛을 닮은 색들이 출현한다. 그것은 의미가 부여되기 이전의 무차별적 형태처럼 자유롭다. 2차원 평면으로부터의 자유를 갈망하는 색면들의 요란한 아우성에 작가가 조응한 것일까. ● 작가는 마치 작은 틈새를 공략하여 요새를 허물려 하듯 무서운 기세로 분출되기 시작하는 자유로운 색과 형(形)의 응축된 에너지를 11분 45초 동안 흐르고 중첩되고 충돌하고, 또 흐르게 했다. 본디 자유란 상황에 얽매이지 않은 상태에서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상황에 얽어 매인 상태에서 상황 자체를 변화시킴으로써 능동적으로 쟁취하는 것이다(바슐라르). 작가 이은의 「Eternal(2020)」은 2차원 평면에 겹겹이 쌓아 올린 지면의 장력으로부터, 그리고 중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자유 속에서 새로운 공간을 구현한 작품이다. 리드미컬하게 화면 위를 부유한다. 낮고 빠르게 움직이며 더 넓게 시간과 공간으로 펼쳐지면서 확장과 팽창을 거듭한다. 색면의 곳곳을 3차원 공간으로 되돌리며, 자유롭게 부유하고 진동하는 색의 향연이 무르익는다. 이제 황홀에 이를 수 있는 마지막 계단 앞에 우리는 서 있다.

세상에 없는 낯선 느낌과 마주하기 ● 「Eternal」의 자유로운 시공간은 작곡가 카입(Kayip)의 사운드에 힘입어 황홀을 향한 스테이지에 오른다. '자기부상열차가 빠르게 시간 속을 내달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저 먼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장엄한 음향이 작품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이제 존재 전환의 순간이 도래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는 갖추어졌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기다림일지 모른다. '세상에 없는 낯선 느낌'을 가진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을. 우리는 감각이라는 도약대를 밟고 한순간 비약하여 도달하게 될 초감각적 세계의 체험을 목전에 두고 있다. 수만 년전 라스코 동굴에서 태초의 그들이, 그리고 가라이(아르헨티나) 거리에 있는 고옥의 지하에서 보르헤스가 경험했던 그것을 우리도 지금 마주할 수 있을까.

세계의 끝에서 ● 작가 이은은 우리의 시선과 호흡과 공명하며 에너지를 흡수하고 분출하는 그녀의 내밀한 공간을 '무한이 도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키려 한다. 존재의 전환을 꿈꾸는 것이다. 유한한 존재가 무한을 마주한다는 것은 기실 불가능한 가능성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밀한 공간에 '무한의 도래'라는 사건에는 일종의 우리의 '의식의 각성' 혹은 인간존재의 '심화'라는 식의 거창한 이름이 항상 붙곤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의미가 부여되기 이전, 어떤 이름을 부여받기 이전의 순간, 낯선 순간과 마주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온전하고도 충일한 이해에 이르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 작가 이은은 바로 이러한 불가능의 가능성에 대한 열망을 시적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그녀는 장엄한 우주, 무한, 태초의 비밀과 같이 우리의 감각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지점, 즉 세계의 끝에서 존재의 전모를 바라보고자 한다. 존재는 '모든 의미가 제거된 그 끝에 이르러 드러난다'고 한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포착해내기 위해 작가는 쉼없이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예민한 작가의 촉으로 그것을 포착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작가는 '끝없이' '무한한' 존재의 입구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낸다.

다시, 영원 ● 이제 우리는 작가와 함께 그 존재의 입구에 서 있다. 새하얀 소금 결정 위에 일렁이는 검푸른 바다. 곧 사라질 새벽녘 창백한 달과 함께 시작될 새로운 공간이 출현하는 그 순간을 함께 해보길 바란다(「Pale Peach 2020(영상 설치, 2분 37초)」). 작가 이은이 마주한 '푸른 빛 눈'과 함께 되찾은 영원은 랭보가 찾아낸 그것과 같은 듯 다르다. ● 다시 찾아냈다. / 무엇을? 영원을. / 그것은 창백한 달과 섞인 / 바다 ■ 박겸숙